※뱅상 시네마: 花樣年華(https://www.postype.com/@baengsangcinema) 참가작
첫 키스는 탄산맛.
고등학교 매점 뒤 자판기에 500원 넣고 뽑아낼 수 있는 캔 음료의 탄산. 알코올이나 탄산이나 해롭고 어른들은 연말마다 알코올을 찾아대면서 왜 애들에게는 탄산만 허락했는지, 예나 지금이나 알 수 없다.
“만족하나?”
기상호, 상호 선배.
키는 나와 비슷하고 얼굴은 나보다 어려 보이면서 3학년. 그 눈동자를 떠올릴 때면 고요한 물 위를 유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파도 따위 치지 않는 잔잔한 물 위에 나는 몸을 맡긴다.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햇살을 쬐면서 헤엄치는 해파리가 되는 기분이다.
선배의 입술은 누구 때문인지 모를 윤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내 입술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선배가 내게 입을 맞추었으니 말이다.
그 키스의 느낌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그때는 몰랐다.
“… 모르겠어요.”
이제는 묘사할 수 있다.
“한 번 더 해 보지 뭐.”
남다를 것 없는 내 삶의 영화같은 순간.
*
사람이 불량해지는 과정과 삶의 의지를 잃는 과정은 꽤 비슷하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랬다.
내가 사는 동네는 흔히 말하는 달동네였다. 그네의 사슬은 녹슬어서 새빨갛고 미끄럼틀의 손잡이는 벗겨져서 잿빛인 곳. 언제인가 딴길로 새서 초등학교 근처의 창문 빼고 비바람 샐 틈 하나 없어 보이는 아파트와 페인트가 벗겨지지 않은 미끄럼틀과 그네를 봤을 때의 충격은 엄청났다.
그러나 공사판에서 일하는 아버지나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그분들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세상이 그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전부 받아주기에는 좁은 탓에, 밀려났을 뿐. 그들은 자신에게 좋은 걸 해 주지 못해 미안해했다.
“병찬아…, 남들을 미워하지 말거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알았지?”
얼굴보다도 손에 주름이 더 잡힌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돌아오면 수건을 내밀어 맞아주던 어머니. 지금 돌아보면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가족이 남이냐’-‘남이지’ 따위의 콩트를 생각하면 차라리 자기들을 미워하라는 의미였던 것도 같다.
“너네 집 거지라며?”
“밥은 먹고 사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내 집이 알려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관심이 필요한 곳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쓸데없는 것에는 어찌 관심이 많았는지. 주먹으로 툭툭거리며 시비를 걸어대는데 아프다기보다 귀찮았다. 신선한 배추 아까운 줄 모르고 소세지만 골라먹으며 뒤룩뒤룩 살찐 것들의 주먹은 참 물렀다.
“너네 엄마도 참 불쌍하다!”
그리고 내 두 주먹이 생각보다 맵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부모님을 거들먹거리는 녀석들의 얼굴을 정확히 쳤더니 애는 코피가 터졌고 엉엉 울어댔다. 다른 녀석들이 또 덤벼서 방금 전처럼 몇 대 더 쳐 주니 울음소리가 더 늘었다. 그때부터 나를 괴롭히는 애들이 없어졌다.
“야, 담배나 필래?”
“담배?”
“형들이 말하는데 좋은 거래.”
처음 핀 담배는 더럽게 맛이 없었다. 한 모금만 빨고 뱉어버린 뒤 다시는 하지 않았다. 강요하는 녀석들의 손가락을 담배 짓밟듯 똑똑 부러뜨리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이거 뭔 맛으로 먹는대?”
“몰라.”
술도 마찬가지였다. 쓰고 맛없고 머리도 아프고 정말 쓸데없는 액체였다. 역시 강요하는 녀석들은 코에서 투명하지는 않은 물이 나오게 만들어줬다.
그때쯤 되자 담배를 피지 않아도 술을 마시지 않아도 나를 무시하는 녀석들은 없었다. 나는 패싸움의 한가운데에 서서 재킷을 입고 뛰어다녔다. 재킷은 걸칠 생각 없었는데 으스대는 놈에게서 뺏었다. 입고 싶다는 생각으로 뺏은 것은 아니었는데 놈이 자꾸 깝쳤다. 꽤 마음에 들었고 부모님께는 학교 아나바다 장터에서 얻었다고 거짓말했다.
“아나바다 장터라니, 언제 열렸니?”
“전에요.”
그즈음 내 양심이 정말 닳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마저 거짓말을 했다. 인생이라는 거, 정말로 재미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다. 중학교까지야 의무 교육이라고 결석이 쌓이건 아니건 그럭저럭 다닐 수 있었는데 고등학교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차라리 일찍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올해 1학년 2반 담임을 맡게 된 이규후라고 한다.”
그런데 여러 지역에서 사람이 모이기 때문인지 좋은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1학년 국어 교사이자 담임 선생님이신 이규후 선생님의 주선으로 학비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한평생 공부와 담쌓은 녀석이 복지제도가 뭔지 이해했겠나, 그냥 선생님 말‘만’ 잘 들으면 되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른 교사 말을 들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는 뜻이다.
“이 선생님, 저 녀석 좀 어떻게 해 보세요!”
“저렇게 지지리 말 안 듣는 녀석은 처음이에요, 정말.”
“다들 진정하세요.”
저런 말은 교사실에서 학생이 좀 멀어지고 났을 때 해야 하는 말 아닌가. 이규후 선생님이 나를 안타까워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병찬아, 공부에 흥미를 못 붙이는 이유가 있니?”
“…….”
“전에 내가 읽어보라는 책 감상문은 잘 썼던데.”
“…….”
책 감상문은 이규후 선생님이 내게 권한 일들 중 하나였다. 이규후 선생님이 권하는 책들을 읽으면서 옛날에 도서관에 다녔었던 기억이 났다.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학원에 다니지 않는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먹고 자고 하는 것밖에 없었고, 돈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도서관뿐이었다.
“몰라요.”
“흠…”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은혜를 갚고 싶어도 그럴 능력 따위 없을 것이다. 결초보은을 이해하는 능력과 실행하는 능력은 다르다. 이해하는 것은 머리만 괜찮으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실행하는 것은 몸이 괜찮아도 무조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규후 선생님은 고민하는 듯하더니 나를 내보냈다.
3월 모의고사를 대충 보내고, 4월이 찾아왔다. 다른 말로 체육대회와 중간고사 시즌.
체육대회 준비 중에도 내게 말을 걸려는 녀석은 없었다. 단체 티셔츠고 뭐고 돈 내기 싫었다. 그럴 돈이 있으면 핸드크림 살 돈에 보태겠다. 다른 사람들의 손보다 더 주름진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볼 때마다 내 마음도 구겨지는 것 같은데, 하루 입고 말 티셔츠 따위.
“니가 박병찬이가?”
점심 시간 될 때까지 퍼질러 자고 있었는데 누가 내 등을 자꾸 두드렸다.
“누구세요?”
“3학년 1반 기상호라고 한다.”
“아, 네.”
학년 반 불문하고 개인적인 목적으로 다른 학급 교실에 들어가는 것은 교칙 위반이라는 생각보다 3학년이 1학년한테 무슨 볼일이 있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오고 나서는 싸움의 빈도를 좀 줄였다. 같은 학교 녀석들과 싸우는 일도 없었다. 고민하는데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이규후 선생님이 니 좀 봐 달라카대.”
“선생님이요?”
“멘토-멘티 알제? 비슷하다.”
들어본 적 있었다. 우수한 3학년에게 우수한 1, 2학년들을 붙여서 점심 시간에 공부하도록 하는 프로그램. 3학년은 수능을 봐야 하니까 1학기까지만 멘토를 하고 그동안 공부한 2학년이 2학기에서 멘토가 되어 1학년들을 지도한다. 참가하고 싶다면 참가해도 되지만 대체로 선생들이 일부 우등생들에게 먼저 귀띔해서 시작된다는 소문이 있었다.
“싫어요.”
“와?”
“싫다고요.”
하지만 그것과 내가 무슨 인연인가. 이규후 선생님이 나를 좋게 봐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나한테는 그 은혜를 갚은 수단 따위는 없을뿐더러 다른 사람과 붙어다니는 것은 싫다. 특히 저 선배처럼 오래된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괜히 욕지기가 올라온다.
“다른 1학년들도 많잖아요. 걔네한테나 가세요.”
“멘토-멘티 하러 온 거 아인데?”
“어쩌라고요.”
이쯤 됐으면 알아서 이규후 선생님한테 이르겠지. 이규후 선생님의 잔소리는 견딜 만하다. 출석 일수는 적당히 채우고 있으니까 졸업만 할 거다. 졸업하고 나면…, 글쎄,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나는 아버지처럼 힘이 세니까 힘 쓰는 일 골라보면 될 것이다.
“내일 또 온다.”
웃기고 있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기상호라는 선배는 약속을 지켰다.
“저… 박병찬.”
“뭐.”
“저 3학년 선배가 너 부르는데…”
나한테 말을 전하러 온 녀석은 벌벌 떨고 있었다. 내 악명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겠지. 바로 어제도 옆 고등학교 녀석들하고 한 판 붙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난 싸움이 아니고 밖에서 일어난 싸움이라서 쉬쉬하는 것 같은데 알 녀석들은 다 알 것이다. 특히 남에게나 자기에게나 서열 매기기 좋아하는 남자애들.
“뭐예요.”
“또 온다 했다이가?”
“허.”
선배가 들고 있는 것은 책이었다. 교과서도 다른 학습 관련 도서도 아닌 소설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지금 누구를 놀리나 싶어서 무시하고 교실 문을 쾅 닫았다. 내가 문을 세게 닫아 쾅 소리를 낸다 해도 교사실에서는 그러려니 할 것이다. 선생들도 손을 놓아버리지 않았나.
“뱅차이.”
그 후로도 내가 잠깐 머물거나 가는 곳마다 들리는 같잖은 사투리.
“박병찬.”
발음만 고친다고 사투리가 아니게 되는 줄 아나.
“니 개안나? 아까 미끄러졌다이가.”
진짜 끈질기네.
계속 무시하니 하굣길에까지 쫓아왔다. 말만 선택이지 강제로 참여시키는 9교시급 보충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빠져나오던 참이었다. 석식은 신청 안 했고 학원 안 다니는 이상 강제 참여시킨다는 야간자율학습도 하지 않았다.
“신경 끄세요.”
“밤길 조심하래이. 또 넘어진다.”
스토커라고 해도 무방할 수준의 집착이었다. 차라리 선생님한테 말 더럽게 안 듣는다고 일러바치지 왜 시간을 낭비하나. 말은 걱정하는 것 같은데 얄밉게 들렸다. 계속 그랬던 것처럼 무시하고 가다가 잠깐 뒤돌아봤을 때, 제자리에 서 있는 꼴이 열 받아서 부러 눈에 띄도록 고개를 돌렸다.
“야, 오랜만이다?”
“니가 내 동생들 팼다며?”
그런데 밤길 조심하라는 말이 씨가 됐는지, 집 근처 골목길에서 어디서 본 듯한 양아치들하고 마주쳤다. 그래, 같은 학교 녀석들과 안 싸우지 다른 학교 양아치들과는 여전히 자주 싸웠다. 오늘은 발목이 계속 아파서 빨리 집 가려고 했는데.
“오늘 니네 상대할 기분 아니거든?”
“하하, 이 X끼 좀 봐라.”
“지금 6 대 1이야 X신아.”
6 대 1이면 어쩌라고. 애초에 때리는 것만큼 맞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오늘 조금 맞아주고 내일 다리 낫는대로 쫓아가서 배로 갚으면 그만이었다. 척 봐도 부모님 빽인지 애들 뺏은 건지 뒤룩뒤룩 살찐 몸에 어울리지도 않는 옷들을 잔뜩 걸친 폼이 별로 아플 것 같지도 않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익!
“야, 야, 짭새야!”
“ㅆ발, 튀어!”
반격을 준비하던 찰나,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귀를 찔렀다. 패싸움 때 애들이 저절로 흩어지게 만드는 그 소리. 놈들은 잽싸게 꽁무니를 뺐다. 나도 도망가야 하는지 고민했다가 이번에는 피해자 입장이니 가만 있기로 했다. 잔소리는 덜 듣겠지.
“병찬아, 개안나?”
“선배?”
그런데 나타난 것은 형광색 조끼를 입은 아저씨가 아니고 마이와 조끼를 입은 고등학생, 기상호 선배였다. 선배의 목에는 은색의 호루라기가 걸려 있었다. 호신용으로 호루라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들은 적이 있기는 했다.
“여긴 어떻게…”
“걱정돼서.”
“거짓말.”
“거짓말 하면 먼 이득이 있는데?”
상호 선배가 내게 거짓말을 하면 이득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상호 선배는 내 다리를 살펴보더니 나를 일으켰다.
“병찬아!”
“선생님?”
“호루라기 불기 전에 진작 불렀다.”
이규후 선생님까지 올 줄은 몰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선생님까지 모셔온 거지.
“병찬아, 많이 다쳤니.”
“안 다쳤어요.”
“다행이다.”
안도하는 이규후 선생님의 표정을 보자 가슴이 무거워졌다.
“병찬아. 왜 그러고 있었니. 니가 자주 싸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 그래서요?”
“병찬아.”
“그래서, 실망하셨어요?”
선생님이 나쁜 사람이 아닌데, 나쁜 것은 나이고 선생님은 자기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 컵 끝까지 거의 차 있던 물이 흔들려 넘치는 것처럼 말이 쏟아졌다. 사실 눈에도 물기가 맺히고 있었다. 양심의 가책 따위 무시하면 그만이었는데 눈앞의 이 모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병찬아. 선생님은 어떤 학생이든 바르게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단다.”
“…….”
“내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지 않겠니?”
내가 이야기해도 되는 걸까.
가난한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사람들이 가난을 우습게 여기니까 화가 났다고, 이 화를 풀려면 떠드는 사람들을 쓰러뜨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무도 나불거리지 않아서 편해졌지만 화는 풀리지 않고 속만 더 타들어갔다고, 이유가 뭔지 알 수 없었다고―
“쌤, 길바닥 시려요. 가면서 이야기해요.”
“아, 그래. 상호야, 고생했다.”
상호 선배는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 재킷의 먼지를 털어내고, 내게 가엽다는 시선도 한심하다는 시선도 보내지 않고 서 있었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이규후 선생님 말고 믿어도 되겠구나 싶은 사람이 생겼다.
다음날 나는 학교 상담실에서 내 이야기를 전부 이규후 선생님께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사회의 책임과 내 잘못을 하나하나 주지시키면서, 반성하는 사람이 새로운 삶을 살 자격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후 상호 선배가 이끌어주는대로 공부를 시작했다. 상호 선배는 국어는 물론 수학, 영어, 한국사도 가르쳐주었다. 덧셈 뺄셈 곱셉 나눗셈 떼고 놓아버린 수학이 특히 버거웠는데 상호 선배에게 들으니 이해가 됐다. 사범대에 가서 교사가 되고 싶다는 사람다웠다.
“무슨 교사요?”
“과목은 못 정했는데… 수학이나 과학 아일까.”
“선배 이과였어요?”
“아, 내가 말 안 했나?”
선배는 탐구 과목으로 물리와 화학을 고른 진퉁 이과였다. 물리와 화학도 Ⅰ와 Ⅱ로 나뉜다는데 뭔 차이인지는 모른다.
“문과인 줄 알았는데…”
“글나.”
나는 상호 선배가 문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과보다는 문과가 오지랖이 넓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다.
“마저 문제나 풀어라. 타이머 켠다?”
“네.”
대충 쳤던 3월 모의고사의 문제를 복습하고, 예전에 나왔던 모의고사나 수능 문제들을 풀었다.
“니 현대문학은 좀 하네?”
채점 결과는 분명 최악이었을 텐데, 상호 선배는 용케도 좋은 점을 말했다.
“한글이잖아요.”
“그런 의미 아인 거 알믄서.”
고전문학은 전혀 공감이 안 가지만 현대문학은 나와 닮은 것 같았다. 현대문학이 폭로하는 사회의 부조리의 피해자들이 꼭 엄마와 아빠를 닮아서, 그분들로부터 나온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아서. 그제야 떠올랐는데 내가 도서관에 다녔던 것은 내 상처를 들추면서도 약을 발라줬기 때문인 것 같다.
“문학은 참 멋있지 않나?”
“뭐가요?”
“내가 뭐든지 될 수 있을 것 같다이가.”
그 말을 듣자 상호 선배에게서 내가 겹쳐 보였다.
정확히, 어렸을 적의 나.
“딱 거기까지죠. 뭐에 쓴다고요.”
“쓰는 게 맞긴 한데…, 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참 재미없는 말장난이다.
“뭐에 쓰냐고 한다면…, 방향을 정하는 데 써야지.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라고 했다.”
“삶의 목적이요?”
“그래. 기만으로 들릴 거 아는데…,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내는 믿는다.”
상호 선배의 말은 기만이 맞았다. 가난 때문에 동전 하나를 쓰는 것조차 고민했던 내게 돈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이규후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틀림없이 학력을 고등학교 자퇴로 마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밉지 않았다.
“방금 삶의 목적 운운한 거,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서 나온 대사다.”
“그래요?”
“내는 ‘시’를 ‘문학’으로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당장 영화도 극 문학으로 만들어진 거 아이가.”
상호 선배는 킥킥 웃었다. 한평생 영화라고는 고물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는 것만 본 나한테 영화가 글에서 나오는지 그림에서 나오는지 알 바 아니었다. 알 수 있었던 것은 상호 선배의 표정이 우습다기보다는 시간에 따라 서서히 꽃잎을 여는 나팔꽃 같았다는 것과…, 내 심장 박동이 거세졌다는 것.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상호 선배는 어느새 내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6월 모의고사가 끝나니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상호 선배는 3학년으로 수능을 쳐야 하니 기말고사까지만 봐 주겠다고 했다. 9월 모의고사 전까지는 연락을 받을 수 있는데 그 후로는 휴대전화 배터리를 아예 빼 놓고 살 것이라고.
“병찬아, 매점 가자. 햄이 쏜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선배가 유독 더 내게 다정하게 굴기 시작했다. 아니, 정정한다. 사실 계속 선배는 나를 신경 썼다. 이규후 선생님의 말을 듣고 한 것이라도 그렇게 내게 관심을 쏟아준 사람은 부모님과 이규후 선생님을 제외하면 선배가 처음이었다. 같은 청춘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는 처음이었다.
“병찬아.”
점점 커지는 마음.
“콜라 마실래?”
“콜라 좋아하세요?”
“엉.”
기말고사 하루 전, 나와 선배는 점심을 먹고 매점 뒤편의 자판기로 갔다. 선배의 천 원은 콜라 두 캔으로 바뀌었다.
“선배는 왜 저한테 잘 해줘요?”
오늘 선배와 쓰기로 한 교실에서 한 손으로 콜라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아니면 물어볼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배와 함께 공부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휴대전화는 가지고 있었지만 전화는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었다. 선배와 멀어질 날이 바짝 다가왔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뭔 소리고?”
“자꾸 여지 주는 것 같단 말이에요.”
“무슨 여지?”
“그거야…!”
비로소 나는 솔직하지 못하게 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추잡해질 수 있는지 알았다. 나를 올곧게 쳐다보는 선배의 눈에 내가 비칠 것이라고 생각하니 심장이 더 세차게 박동했다. 다리와 눈과 심장보다 무서운 혀가 날뛰었다.
“키스해달라면 해 줄 거예요?”
내뱉어진 말은 참 구차해서 수건으로 훔치기도 전에 스며들어 버렸다.
고요 속에서 콜라를 단숨에 들이켰다. 미지근해진 콜라는 희한하게 그날따라 목구멍을 매끄럽게 타고 넘어갔다. 뜻밖에도 많이 빠지지 않은 탄산이 입에서 톡톡 터지면서 정신이 들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한 것인지, 이번에야말로 선배에게 욕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 내가 처음 느낀 감각은 선배의 입술이 맞닿는 촉각이었다.
“이제 말할 수 있겠나?”
첫 키스였다.
선배 입은 몰라도 내 입에 남은 것은 단맛뿐이었을 텐데, 단맛이 다 빠진… 탄산맛이 나는 것 같았다.
“… 모르겠어요.”
이제는 묘사할 수 있다.
“한 번 더 해 보지 뭐.”
남다를 것 없는 내 삶의 영화같은 순간.
*
선배 없이 치른 9월 모의고사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상호 선배는 수학교육과로 완전히 진로를 잡았다고 했다. 내가 국어교육과는 정말 안 가냐고 농담 삼아 말하니 사실 자신은 국어를 제일 못한다고 자백했다. 그 못해서 나온 2등급이 수학 1등급과 영어 1등급과 과탐 1/1로 커버가 되는 사람이면서, 정말이지 못된 선배였다.
“공부는 잘 되고 있나?”
“안 되고 있다고 하면 봐 주실 거예요?”
“박병찬.”
“농담이었어요.”
나와 선배는 학교 밖에서도 가끔 만났다.
가끔… 손가락도 꼼지락거려 보고, 입술도 내밀어 봤다. 다시 생각해도 상호 선배는 약은 사람이었다.
“병찬아.”
“네.”
“내 사실 담배 피워 봤다.”
매케한 담배.
“술도 마셔봤다.”
맛없는 술.
“빠른생일이니까, 더 못났었지.”
빠른생일이면 같은 학년 학생들보다 더 어릴 때 했다는 뜻이겠지. 선배에게도 어떤 아픔과 계기가 있었을까. 계속 깔끔해 보였던 옷도 계속 다리지 않는다면 주름져 있을 것임을 새삼스럽게 자각했다. 호루라기 사건 후 실제보다 크게 보였던 선배가 원래대로, 나와 비슷하게 보였다.
“병찬아.”
“네.”
“니가 좋다.”
말 한 마디만으로 전해지는 사랑이 따뜻했다.
“저도요.”
달력은 빠르게 넘어갔다.
선배는 상향으로 넣은 곳이라는 준향대학교에 붙어 수학교육과로 떠나고, 나는 2학년을 맞이했다.
불량배로서 입었던 재킷을 중고장터에 내놓고, 고무줄로 묶을 수 있었던 머리도 적당히 잘랐다. 그즈음 선생들이 내게 보내는 시선이 조금 부드러워진 것이 느껴졌다. 성적이 올라가고 있는 게 확실해지고 나서는 나를 따갑게 보는 시선이 거의 사라졌다.
3학년 때도 3학년 국어 교육을 맡게 되신 이규후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다. 이규후 선생님은 그전이나 그때나 여전히 나의 선생님이었다. 멘토-멘티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나는 영원히 멘티일 것이고, 누군가의 멘토가 되기에는 내가 과거에 저지른 짓들이 많았다.
마침내 나는 준향대학교 국어교육과에 합격했다. 수석 입학, 등록금 전액 면제. 듣자마자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이규후 선생님은 내 손을 잡아주셨고, 내게 소식을 들은 부모님도 나를 안아주셨다.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도 사람으로서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미래.
당장이라도 상호 선배에게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때의 상호 선배는 군대에 가 있었다. 휴대전화도 놓고 갔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도 아니고 1학년 때부터 고무신을 신고 누군가를 기다리다니,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수군거릴 거리로 보일 것 같다. 그 선배도 참, 나 같은 불량배 출신을 좋아하고 취향 특이하다. 그런 선배에게 미쳐버린 나는 더 특이하고.
그리고 어느 휴일,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병찬아.]
남다를 것 없는 내 삶에도 영화같은 순간이 있었다.
너무 놀라워서 잊지 못할―――
-탄산맛-
End.